[끄적끄적] 엄마의 중재
아버지와 엄마의 오리지널은 다섯 남매.
그 다섯 남매 모두 짝을 찾았고
그들 사이에서 여덟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
1940년에 태어나신 아버지부터 2010년에 태어난 동생의 딸까지 스무 명.
현재 우리 가족은 스무 명이다.
엄마는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열여덟 명의 생일과 자녀들 결혼기념일에 금일봉을 하사하신다.
가끔 깜빡하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딸과 아들, 사위와 며느리, 손녀가 함께하는 단톡방에
누군가 올려놓은 축하 인사를 보시고 얼른
은행 계좌로 사랑을 전송하신다.
6월 19일은 막내 제부 생일.
아주 가끔 시간이 맞을 때면 생일 핑계 삼아
밥 한 끼 먹을 때도 있지만
막내 제부는 결혼과 동시에 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날아가서 생일 밥 함께 먹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늘 그러하듯 생일인 어제도
축하하는 마음 카톡 태워 보냈고
엄마도 금일봉을 보내셨다는데, 잠시 후
“금일봉이 중간에 새는 것 같아요.“
제부의 폭로가 카톡 타고 올라왔다.
엄마가 열여덟 명의 계좌를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
각 집 당 한두 개 정도 메모해두고
이체하면 알아서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하셨나 본데
전달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나 보다.
제부의 폭로에
동생의 변명이 이어졌으나
곧 엄마가 중재하셨다.
”그럼 안되지 몇 푼 안 되는 금일봉 이번에는 전해주도록 해라.“
엄마의 한 마디에 동생은 냉큼 전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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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니가 안 놀아줘!
엄마, 내 껀데 쟤가 안 줘!
엄마, 쟤네 또 싸워!
나 숙제해야 하는데 쟤가 방해해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가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루에 열두 번씩 억울한 일이 생겨났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엄마를 불러대며
엄마의 심판을 기다렸다.
숱한 싸움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타협점을 찾아갔고
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자라면서 엄마의 심판을 기다리는 일이 적어졌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다가 기억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엄마의 중재를
제부 덕에 마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사람.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주던 최고의 엄마를 잊고 살다가,
아주아주 오랜만에 젊은 날의 엄마를 찾았다.
제부의 폭로가 반갑고,
동생의 변명이 재미있고,
엄마의 중재가 든든했다.
2025년 제부의 생일 흔적 속에
부모님의 젊은 날을 담아둔다.